본 홈피나 커뮤니티 동호회를 통해 현재의 더 파이팅 자막을 접하고 계신 분들은 자막 코맨터리에서 '자막이 마음에 안들어어어어!' 하는 본인의 절규성 멘트를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목격했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솔직한 심리상태이기도 하고, 오랜 트라우마가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작업능률 저하에 기반한 것이다.
이번 글에선 이 트라우마에 대해서 변명 비슷한 해명을 해보고자 한다.
자아, 그럼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당시는 일본어 숙달자는 물론이거니와 지금처럼 자막을 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되지 않았다.
'흥, 이따구로 한다 이거지? 너 아님 만들 놈이 없냐? 치워라 흥칫핏'
...하던 시절도 아니고, 애초에 정기적으로 자막을 내놓던 사람들조차 드물던 시기로 기억된다. ─어쩌면 당시 인터넷 문명에 익숙치 못했던 열등한 검색능력과 귀차니즘이 빚어낸 오해일지도 모르고─
해서 국내에 코믹스 원작이 발매된 경우에는 코믹스판의 번역을 그대로 옮겨적어 싱크만 맞춘 자막들마저 있었다.
...그렇게 자막으로서는 나의 처녀작인 더 파이팅 24화의 자막과 대본이 완성되었다.
─나도 소실된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신비로에 남아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엔 들리는 것, 알아들을 수 있는 것 위주로 번역을 옮겨적었다. 그리고서 바로 집 앞에 있는 책방으로 뽀로로 달려나가서 내용을 확인하여 보충하는 식으로 작업을 했다. 사전은 아예 손에서 놓을 새도 없었고, 덕분에 시간은 5시간이고 8시간이고 한참이 걸렸지만 시간가는 줄 몰랐다. 아, 이 때는 싱크나 헤드 작성법도 몰라서 그냥 싱크만 찍거나 대본만 작성하기도 했던 것 같다.
창작에 가까운 의역에, 대사는 길고길어서 2줄 3줄은 기본에 싱크도 안 맞으며 간간히 블랭크(빈칸)이나 못 알아듣겠다는 둥 푸념에 이모티콘까지 들어간 기상천외한 녀석으로, 지금 열어서 보면 그야말로 콘크리트 바닥을 손톱으로 파고서 묏자리를 만들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녀석이다.
당시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땜방용' 임을 강조하며 지금보다도 ─지금이라고 해서 잘난 거 하나도 없지만─ 더더욱 저자세를 취하며 양해를 구하는 글로 각 동호회에 올렸고 대부분은 격려의 메세지를 보내주었다.
'수고했어요' '이만한 게 어디예요' '그렇게 엉망은 아닌 걸요'
'학생이시면서 대단하네요'
이처럼, 당시로서는 나름 만족감도 들었고 무엇보다도 배운 걸 써먹었다는 충족함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재미있기도 했으며 사람들의 따스한 코멘트가 있었기에 이 시기는 내 안에선 유난히 훈훈하고 따사로웠던 시절로 기억된다.
이후 점을 찍듯이 몇 화 몇 화 제작을 하다가 최초로 작품 하나를 통째로 잡아서 해보기로 ─쵸비츠, 최종병기그녀 등─ 맘을 먹지만, 뭐 일단 넘어가고.
二. 혹서기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애니메를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여전히 일본어 공부와 자막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간, 더 파이팅은 국내에 게임이 정발되기도 하고 정식으로 판권이 들어와 국내 방영이 되기도 하고 75화로 완결이 나기도 해서 국내에도 DVD가 정발이 되었고, 인터넷에도 많은 아마추어 번역/자막 제작자들이 등장하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혹서기가 시작됐다.
어느 날부터 육두문자로 점철된 메일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제목 : 있잖아요
본문 : 육두문자육두문자 개발바닥소발바닥말발바닥용발바닥
...이러고 있는데 개요를 알 수 있을 리가.
좀 더 시간이 흐르자 조금 더 내용이 있는 욕메일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제목 : 더 파이팅
본문 : 이따구로 만들래? 확 쌍판을 아스팔트에.... [중략]
대충 이 정도.
이 때 생각하기에도 초반에 만든 녀석들은 내가 봐도 부끄러운 녀석들이긴 하니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근데, HAC동도 없어지고 신비로에서도 굳이 검색하지 않는 이상 나오지도 않을텐데, 대체 파일을 어디서 구한 걸까?
어찌되었건 제작한 건 나고, 배포한 것도 나였으니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다음 사항을 장문으로 정리한 답변을 일일이 보내기에 이르렀다.
- 당시에 자막이 안 나와서 땜방용으로 제작이 된 것이다.
- 당시에 난 공부를 막 시작한 학생이었고, 해서 어설픈 면이 많이 있다.
- 분명 인터넷 배포는 자유라고 했으나 P2P로 인한 공유까지 내가 간섭할 여지는 없었다.
구구절절히, 한시간이 걸리든 두시간이 걸리든 정성들여 답변을 작성해서 송신했다.
답장에 대한 답장은 거의 오지 않았고... 아니, 그쪽에서 읽는 경우조차 드물었다.
나는 그런 메일에 대해서 비슷한 내용을 수없이 작성했고, 5년이 지나서도 저주와도 같은 과거의 허물은 끈덕지게 나를 물고 늘어졌다. 결국 나도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또 같은 메일이 왔고, 난 기진맥진하여 비슷한 내용의 답장을 송신했다.
어느 날은 드물게 답변이 왔다 싶었더니, 꽤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져있었다.
- 그래도 네 잘못이다
- 학생이었고 공부 중이었고 나발이고 발신원은 너 아니냐
- 넷 공간의 영속성을 우습게 본 네 잘못이다.
- 게다가 난 마일리지까지 지불하고 정당하게 받았는데 내가 왜 이런 개같은 걸 보고 앉았어야 하냐.
글쎄.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저도 음성적인 루트로 소스를 구하는 처지라 큰소리는 못 치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메일을 보내는 대부분의 사람은 P2P서비스에 지불하는 마일리지 비용이 정당한 소비행위인 줄 아는 경향이 큰 듯 했다. 인터넷의 영속성을 들먹이며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게 어디 내가 바란 일이란 말인가? 내가 각 커뮤니티 게시글에다 구했던 양해의 글은 다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5년 이상이나 흘렀고, 대체 어디를 통해 흘렀고 어디로 통해 받았는지도 모르는 이 사람의 분노는 과연 가당키나 하다는 말인가? 어째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퍼져나간 일이 내 책임이 된다는 말인가? 왜 이런 쌍욕을 먹어야 하는가?
매우 가슴이 아팠다. 어째서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 해야 하는건지
어디 호소할 곳도 없이 가슴만 타들어갔다.
그렇게, 더 파이팅이란 단어는 본인의 흑역사이자 트라우마가 되었다.
三. 현재
현재의 나는 아시는 분들만 아시겠지만 여전히 듣보잡 삼류 번역 지망생이다.
자막제작은,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나 어느 정도는 형태는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도 더 파이팅만 잡으면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마치 멋모르고 자막 만들어보겠다고 설쳐대던 ─지금도 그렇지만─ 무능하기 그지없는 고 1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더 파이팅엔 평상시에는 잘 쓰이지 않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실황 중계나 용어 같은 것도 국내와는 미묘하게 달라서 신경은 배로 쓰는 편이고, 이걸 어떻게 옮기면 한국어 문맥상 껄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보면 그에 곱절로 신경이 쓰인다. 트라우마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얼어붙은 사고는 또다시 그에 곱절로 신경이 쓰이게 한다. 시간이 다른 것들보다 더 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는 도중에 문장은 엉키고 풀리면서
좀 더 나아지기도 하고 아주 망가져버리기도 한다.
최근 들어선 어찌된 일인지 후자가 많아지는 것 같다.
트라우마에 대한 공포에 겁쟁이가 되어 바싹 땅에 엎드린 채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제작물의 퀄리티는 그 때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듯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때로는 그보다 못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 때문에 자막을 내는 일이 즐거움이 아닌 고역스러움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이것이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놓고도 번역 퀄리티에 대해 툴툴거리게 된 사연이다.
길고도 긴 글, 끝까지 읽어준 분들은 몇이나 될런지 모르겠다.
돈받고 하는 짓도 아닌데, 싫으면 때려치우면 될 게 아니냐고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이다. 아직은 돈받고 번역일을 받지도 못하고, 그저 취미에 불과한 일을 고통받으며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흑역사이자 트라우마인 동시에 더 파이팅은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사람에게 상처 입은 개는 사람을 무서워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완전히 버리는 일은 없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좋은 추억이 남았기 때문일게다. 내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다.
또한 얼마 되지는 않지만 무능하기 그지없는 듣보잡 삼류 번역 지망생인 내 번역물을 기다려주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인은 이런 일에 있어서, 좋게 말하자면 세심하며 나쁘게 말하자면 많이 소심한 편이기에, 이 트라우마를 떨쳐내는 일은 굉장히 어려울 듯 하다. 아마도 심장에 꽂힌 이노무 가시는 내가 번역가를 지망하는 한 평생 박혀서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난 여건이 되는 한, 변명 같기도 속죄 같기도 한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이 괴로움을 삼키다보면 언젠가는 발전이 있을 거라는 실낫 같은 희망을 품고서.